Moha

노인을 위한 서비스는 없다

그래이스 앤 프랭키 시즌 1 에피소드 7.

가끔 부모님이 운영하는 카페를 돕는다. 한적한 동네에 위치해서 그런지 낮엔 40~60대 손님들이 많이 오신다.

“드시고 가실 거면, QR 체크인 부탁드릴게요.”

“아 잠깐만. 이거 딸내미가 알려줬는데”

(동행인) “언니, 내가 해줄 게 카톡 들어가면 바로 있어. 여기.”

내가 손님을 무안하게 만들었나 싶었다. 갑자기 평화로운 카페에 QR 체크인을 위한 소동이 벌어졌다.

“언니껀 바로 되는 게 아니네. 난 안 그런데? 뭐라고 써있는거야. (눈을 가늘게 뜨고) 인증번호? 아 문자 왔다. 잠깐만. 뭐야 없어져 버렸어!”

이쯤 되면 내가 해드려야 하나 싶었다. 본업으로 IT 계열에 종사하는 사람이 이 정도의 도움을 드릴 수 있지 않나 생각하던 차에 도움을 요청하셨다.

“저기, 이거 인증번호 좀 눌러줘요. 문자가 왔는데 너무 작아서 보이질 않아.”

나는 숫자 여섯 자리를 눌러드리고, 쉐이킹 기능도 켰다. 이제 카톡에 들어가서 흔들기만 하면 QR 체크인을 하실 수 있다고 알려드렸다.

자주 목격하는 일이면서도 어쩐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얼마 전 새 가습기를 구입하곤 사용설명서를 정독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충분히 젊지만) 더 젊었을 땐 거들떠보지 않던 것이었다. 설명서를 읽지 않아도 너무 쉽게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알던 방식으로 제품이 만들어지지 않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선 설명서가 필요했다.

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지 설명서 없이는 제품을 쓸 수 없는 상황이 곧 나에게 펼쳐지리란 불안감 때문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분들이 어떻게 QR 체크인을 하는지 알았고 잘 진행하고 있었지만, 휴대전화 인증번호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했다. 어떻게 사용하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알아도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는 것이 이 문제의 무서운 핵심이다. 이분들이 사용하기 위해서는 문자 알림이 좀 더 머물러있었어야 했고, 휴대전화의 기본 글씨가 더 컸어야 했다.

아이폰과 갤럭시엔 모두 텍스트 크기를 키울 수 있는 옵션이 있다. 하지만 앱이 어떻게 개발되느냐에 따라 시스템 텍스트 크기가 커지면 앱 내의 텍스트 또한 커지기도 하고, 시스템 텍스트 크기에 상관없이 정해놓은 글씨 크기를 강제로 보여주기도 한다. 나도 시스템 텍스트 크기에 따라 대응하지 않고 디자인했음을 고백한다. 글씨 크기를 강제하기도 했고, 시스템 텍스트 크기를 반영한다 한들 큰 글씨에서는 레이아웃이 깨지는 것을 눈감았다. ‘바쁜데, 이런 것까지 고려해야 하나’, ‘어차피 글씨 크기를 키워서 쓰는 사람들은 우리의 주요 고객이 아니지 않나’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지난 나의 태도를 무척 반성한다. 디자이너라는 직업상 난 매일 내 눈을 혹사하고 있고 그로 인해 시력이 빠르게 늙을 것이 확실하다. 청춘 시력을 모두 바쳐 만든 앱들이 노안이 왔을 때 ‘이제 넌 안 보이는 게 당연하지’하고 배신할 것을 생각하니 비참하기 그지없다.

노인들이 쓸 수 있도록 서비스를 만드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 고객군에 노인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들을 위해 조금의 노력을 들인다면 충분히 노인이 쓰기 편한 서비스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내용을 인지하는 시간이 느려지면 그에 맞춰 주면 되는 것이고, 글씨 크기도 마찬가지다.

하루씩 늙어가고 있는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노력과 더불어 꽤 오래 살아갈 우리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내가 노인이 될 때쯤이면 지금보다 더 IT서비스들이 생활에 침투할 것이고,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어린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밥도 못 시켜 먹을 수도 있겠다는 무서운 예감이 든다.

난 내 미래를 위해 이 업계에서 오래 일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지금 IT 계열 종사자들은 20~40대의 젊은 사람들이고 그들은 아직 인지 속도가 떨어지지도, 노안이 오지도 않았다. 나이 든 사람도 IT업계에 있어야 노인의 문제를 공감하고 해결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서라도 난 오래도록 열심히 일해야겠다.

2020.4.16 씀